닫기

노벨평화상 수상 러 독립언론 편집장의 우크라 전쟁 진실 알리기 투쟁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review.asiatoday.co.kr/kn/view.php?key=20220323010013198

글자크기

닫기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2. 03. 23. 13:12

러 '노바야 가제타', 신문 발행 지속 결정
검열·형사처벌 위협 속 이미지·증언·부호 등으로 우크라 전쟁 진실 보도
푸틴 집권후 기자 6명, 망치 폭행·독살·납치·피격 등 무참히 살해
Nobel Peace Prize 2021 winner Dmitry Muratov gives interview to TASS News Agency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지난해 12월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사무실에서 타스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타스=연합뉴스
22년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강권 정치하에서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60)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의 ‘진실’을 알리면서도 한층 강화된 검열법을 준수하는 ‘생존 투쟁’의 길을 선택했다.

러시아 매체는 ‘전쟁 범죄자’ 푸틴이 지난 4일(현지시간) 서명한 검열법에 따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없고,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써야 한다.

◇ ‘전범 독재자’ 푸틴, 러시아군·정부 기관 허위정보 유포자에 최대 15년 징역형...러 독립 언론 폐간·수백명 언론인 러시아 탈출

새로운 검열법은 러시아군의 활동에 관해 ‘허위정보’를 유포한 사람에 대해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러시아 의회는 22일 이 법을 광범위한 정부 기관 관련 허위정보 유포자로 확대했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1일 반전쟁 여론 확산을 우려해 독립 언론 TV 레인(Rain)과 에코 오브 모스크바(Echo of Moscow)의 방송을 중단시켰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도 차단했다. 푸틴 정권이 ‘외국 첩보원’이라고 규정한 수백명의 언론인들은 러시아를 떠났다.

Russia Ukraine Tensions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월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 노벨평화상 수상 무라토프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신문 발행 지속 결정...“독자들에게 전쟁·경제에 관한 심층 기사 제공”

노바야 가제타도 자진 폐간과 발행 지속의 갈림길에 섰다. 이 신문은 4일 검열법 대응을 논의하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편집국(newsroom) 설문조사에서 직원의 75%가 발행 지속을 지지했다. 이 신문의 충성도 높은 독자 그룹이 참여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7800명 중 96%, 24시간 이내에 편집국에 배달된 3500통의 편지는 신문의 계속 발행을 요청했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신문 발행 지속은 우리가 전시 상황에서 계속 일할 것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면책조항을 쓰는 것”이라며 “왜냐하면 전달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정보가 있지만 우리가 자체 검열을 해야 한다는 점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이날 보도했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푸틴 정권의 규제에 직면해 신문 발행을 원칙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화를 내며 반응한다고 WP는 전했다.

그는 발행 부수 12만6000부, 한달 홈페이지 방문자 약 2750만명을 보유한 노바야 가제타가 독자들에게 전쟁과 경제에 관한 심층 기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앞서 노바야 가제타는 지난달 24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기자와 편집자 회의를 열고 전쟁 발발에 따른 신문의 대응 방안, 전시 상황의 어려움, 준비된 자와 되지 않은 자를 가리는 담력 점검 등을 진행했다고 WP는 밝혔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그들(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미래 세대 전체의 삶을 순식간에 파괴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며 지난달 24일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된 첫번째 신문을 발행하기로 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이틀 만에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미디어 감독청인 ‘로스콤나드조르’가 노바야 가제타 폐간을 위협하면서 우크라이나 도시 포격과 러시아군 활동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에 관한 거짓 정보의 삭제를 요구했다고 WP는 밝혔다.

‘로스콤나드조르’는 또한 ‘공격’ ‘침공’ ‘전쟁’ 사용을 금지하고,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정부 공식 용어만 사용토록 했다.

노바야 가제타 표지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지난 9일(현지시간) 표지 사진./사진=트위터 캡처
◇ 한층 강화된 검열과 형사처벌 위협 속 ‘노바야 가제타’, 시각적 스토리텔링, 직접적인 증언, 누락에 대한 투명성 전략 채택

이런 상황에서 노바야 가제타는 시각적 스토리텔링, 직접적인 증언, 누락에 대한 투명성, 그리고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 독자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전달하기 위한 함축된 의미를 사용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지난 9일 표지를 ‘노바야의 이 에디션(판)은 러시아의 수정된 형법의 모든 법률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표제와 함께 핵폭발 후의 버섯구름 앞에서 ‘백조의 호수’를 추는 네명의 발레리나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WP는 이 표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전제한 뒤 “러시아 국영TV가 19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시도 동안 ‘백조의 호수’를 방송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발레를 러시아 정부가 위기를 감추려고 한다는 신호로 널리 이해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바야 가제타 특파원은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프 영안실을 방문, 냉동고에 17세와 3세인 두 자매의 시신이 함께 쌓여있는 모습을 찍어 기사에 첨부했고, 동영상에서는 “시신을 직접 봤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직접적인 반대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기사에는 누락된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함께 회색으로 표시된 여러 구절이 있었다. ‘죽은 러시아 군인에 관한 우크라이나군의 말’이라고 쓴 뒤 우크라이나군 관리의 말은 <...>로 대체하는 식이다. 전쟁 등 금지어도 <...>로 표시하고 있다.

독자들이 항간을 읽어 의미를 파악하라는 것이다.

Russia Ukraine War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이르핀에서 피난 도중 러시아 침략군의 박격포탄 공격에 사망한 어머니와 어린 남매를 보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 신문 수송업자, 검열법 두려워 배달 거부도...독자들, 직접 신문사 찾아 신문 수령

노바야 가제타가 지난 14일 러시아 국영 방송 ‘채널1’ 편집자 마리나 오브샤니코바(44)가 뉴스 생방송 중 스튜디오에 들어와 ‘전쟁 반대(No War)’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를 한 사건에 대해 온라인에서 TV 방송 캡처 사진을 게재하면서도 종이의 텍스트는 흐리게 처리했다.

이에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대변인인 키라 야르미슈가 트위터를 통해 ‘채널 1의 여성이 노바야 가제타보다 용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등 비판이 제기되자 신문에서는 ‘좀비 상자(TV 지칭 ‘바보 상자’) 균열’이라는 표제와 함께 종이의 두번의 ‘전쟁’ 단어만 흐리게 표시한 사진을 사용했다.

하지만 신문 수송업자가 검열법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해 이 신문을 가판대에 배달하는 것을 거부해 사무실에서 직접 신문을 배포하면서 방문한 수많은 독자를 촬영했다.

일부는 텔레그램이나 금지된 웹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가상 사설망(VPN)을 통해 푸틴 정권의 통제를 받지 않는 뉴스를 볼 만큼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독자들에게 신문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청년은 VPN이 없으면 노바야 가제타가 푸틴 정권이 그토록 숨기려고 애쓰고 있는 진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Court fines Channel One editor Marina Ovsyannikova who ran onto live TV news
지난 14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방송 ‘채널1’ 뉴스 생방송 중 스튜디오에 들어와 ‘전쟁 반대(No War)’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를 한 사건으로 기소된 ‘채널1’ 편집자 마리나 오브샤니코바(44)가 15일 러시아 모스크바 오스탄키노 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사진=타스=연합뉴스
◇ 노바야 가제타, 1993년 창간...1990년대 러 자유주의 지식인 단골 매체...푸틴 집권후 기자 6명, 망치 폭행·독살·납치·피격 등 무참히 살해

무라토프 편집장은 1993년 다른 동료 기자들과 함께 소련 공산당 청년동맹 기관지였던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에서 나와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했다.

신문을 창간하기 위해 기자들이 자금을 투자했고,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구입했다. 러시아는 1993년 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검열은 금지한다’는 새로운 헌법을 채택해 언론 자유는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노바야 가제타는 1990년대 독립 언론의 전성기 동안 러시아 자유주의 지식인이 의존하는(go-to) 매체로 자리매김했다고 WP는 설명했다.

이 신문은 악화된 언론 환경 속에서도 특히 체첸 전쟁에 대한 획기적인 탐사 보도를 진행했다. 하지만 푸틴이 TV 채널을 선전기구로 만들기 위해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노바야 가제타는 소속 기자들이 살해되는 등 전혀 다른 압력에 직면해왔다.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6명의 직원이 무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한명은 망치에 머리를 맞았고, 다른 사람은 독살됐으며 또 다른 여성은 납치된 후 시신이 길가에서 발견됐다. 스타 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2006년 그녀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푸틴 독재에 맞선 공적을 인정받아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