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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58> 정치인 1호 가수의 노래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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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0. 22. 17:46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으니, 오고 가는 삶과 죽음 또한 이러한 것이다(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 인생을 '하숙생'에 비유한 최희준의 노래는 불교의 무상게송(無常偈頌)을 떠올린다. 삶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의미다.

김석야가 쓴 KBS 연속극 '하숙생'의 줄거리 또한 그랬다. 가장 순수해야 할 청춘남녀의 사랑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배신도 그렇고, 복수를 향한 정념 또한 부질없음을 시사한다. 물질만능주의에 오염되기 시작하는 산업화 시대 초기의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이었다. 1960년대는 문화방송(MBC), 동아방송(DBS), 동양방송(TBC) 등 라디오 방송국이 잇따라 개국하는 한편 본격적인 TV 시대가 열릴 때였다.

악극단 쇼가 퇴조하고 안방극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중가요의 판도 또한 변화의 물결 위에 있었다. 그래서 최희준의 전성기는 드라마와 영화 주제가의 전성시대와 맞물려 있다. 그의 히트곡이 대부분 드라마나 영화 주제가였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라고는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절, 재방송까지 하는 연속극 주제가로 거듭 전파를 타면서 최희준의 노래는 더 유명세를 누리게 된 것이다.
KBS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였던 '하숙생'도 그랬다. 하물며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시청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히트곡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1965년 연말 무렵 전남 여수의 한 공연장에서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관객들이 '하숙생'을 불러달라고 난리가 났는데, 가수 최희준이 미처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연속극 방송 5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희준은 다방면에서 화제의 인물이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 가수에다, 가요 100년사에서 국회의원이 된 유일한 가수이기도 했다. 또한 재즈 대중화와 자유로운 리듬을 추구했지만, 자신의 창법과 맞지 않다며 트로트를 부르지 않는 고집을 지닌 음악인이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박성서는 "미 8군 무대 출신 허스키 보이스로 우리 가요계를 '미성의 시대'에서 '개성의 시대'로 전환시킨 주인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데뷔해 '하숙생' '맨발의 청춘' '팔도강산' '진고개 신사' '종점' '길 잃은 철새' '노신사'에 이르기까지 10여 년간 가요계 정상을 지켰던 '신사 가수'였다. 매너 있는 언행에다 신사풍의 노래를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선성원은 "코미디언 구봉서가 붙여준 '찐빵'이라는 별명이 널리 통용되었는데, 실제로도 구수하고 푸근한 인간미를 지닌 분이었다"고 했다.

작사가 정두수는 "최희준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저음과 찡한 음색으로 '한국의 냇 킹 콜'로 불렸다"고 회고했다. '가수 출신 정치인 1호'라는 수식어를 달고 여의도까지 진출했지만 늘 소박하고 서민적인 캐릭터를 지녔던 최희준. 그는 인생이란 그저 한 시절 '하숙생'으로 머물다 떠나야 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체득했는지도 모른다. 무릇 삶이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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