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자본주의가 불필요한 제품 사게 한다는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review.asiatoday.co.kr/kn/view.php?key=20231029010016227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10. 29. 17:55

2023102401002171700122891
독일 <디 벨트> 前편집장 라이너 지텔만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는 최근에 ≪반자본주의자들의 열 가지 거짓말≫을 출판했다. 지텔만 박사의 허락을 받아 그의 칼럼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자본주의의 격렬한 고발장, 자기의 2015년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선언했다. "시장이 자기 제품을 파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극단적인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불필요한 구매와 지출의 회오리바람에 쉽게 휘말려 들 수 있습니다. 강박적인 소비주의는 기술-경제적 패러다임이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 예입니다." 비슷한 기분으로, 스위스 사회학자 장 지글러(Jean Ziegler)도 이렇게 썼다.

"소비자 사회는 소수의 간단한 원리에 기초해 있다. 그것의 구성원들은 재화들을 계속 더 많이 사고, 소비하며, 버리도록 유혹받고 자기들에게 그것들이 실제로 필요하지 않을 때조차도 새 재화들을 얻도록 부추겨지는 고객들이다."

그러한 소비주의 비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넓은 노동계급 대중의 빈곤화에 이른다는 명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서유럽에서의 발전들로 기각되었을 때, "신좌파(New Left)"는 사실상 논쟁을 돌렸다. 너무 적은 소비가 아니라, 너무 많은 소비가 자본주의의 진정한 해악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심지어 "소비의 공포(the terror of consumption)"에 관한 이야기조차 있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회사들이 처음 광고를 통해 소비자 사이에서 인위적으로 "필요들(needs)"을 창출하고, 그다음, "버리는 사회(throwaway society)"의 전형에서, 부분적으로 그것들을 값싼 열등재들로 만족시키는 것을 수반했다.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은 다음과 같이 쓰면서 "과도한 풍부함(over-abundance)"과 "소비자 사회(consumer society)"에 대해 비판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자유의 증거(즉,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얻을 수 있다는 점)를 우리의 노예화의 증거로 바꾸는데, 우리의 욕망이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왼쪽에 있건 오른쪽에 있건, 지식인들에게는,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자신들을 경제 엘리트와 일반 대중 양쪽 모두와 구별하는 수단이었고 지금도 그런 수단이 되고 있다. 지식인들, 자본주의 주도의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전도사인 그들은 자기들과 같지 않은 모든 사람, 즉 피상적인 소비에 탐닉하는 대중과 역시 올바른 교육과 문화가 없는 자본가들을 근본적으로 경멸한다. 이 지식인-비판가들은 이렇게 단정한다. 즉, 대중과 자본가들 양쪽 모두는, 경멸적인 물질주의로 단결하는데, 이것은 교육받은 부르주아 계급을 특징짓는 진정한 가치들의 이상주의와 고상한 문화와는 완전히 대조된다는 것이다.

소비자 자본주의의 비판은 바로 오늘날까지 지식인들에 의해 계속해서 공식화되고 있는데, 그것은 더욱더 귀에 거슬리고 가차 없게 진행되고 있다. 2009년에, 영국의 닐 로슨(Neal Lawson)은 ≪가디언(The Guardian)≫지에 "우리가 장보기를 원하는가, 자유롭기를 원하는가? 빨리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제목으로 글을 발표했다. 그의 이렇게 비판한다. "우리는 정체성을 사고, 존경과 인정을 얻으며,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소비한다. 장보기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서로를 아는 지배적인 방식이고, 그것은 존재하고, 알며, 생활하는 다른 방식들을 배제하는 시점에 있다. … 시장은 상어처럼 경쟁한다. 그것은 도덕이 없고 끊임없이 우리를 집어삼켜서 우리가 더 많이 구매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매상고와 이윤이 계속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로슨의 비판은 수백만이 죽은 스탈린의 소련에서 강제 노동과 강제 수용소들의 네트워크인 수용소 군도(Gulag Archipelago)를 그가 소비자 자본주의의 화신(化神)이라고 여기는 이탈리아 명품 상표 구찌(Gucci)와 동일시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체주의, 곧 대안들이 배제되는 사회는 공산주의 좌파와 파시스트 우파의 긴 장화들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구매를 하도록 유혹하면서 그것은 지금 자기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도착한다. 긴 장화들은 이 계절의 색깔과 유행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장보기 욕망에 따라 감시되고, 기록되며, 명령받는다. 강제 노동 수용소(gulag)는 구찌(Gucci)로 대체된다."

물론, 자본주의는 그 제품들이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쓸모없거나 과잉이라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당신이나 내가 쓸모없거나 과잉이라고 부를 수많은 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것이나 필요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는 점에서(아동 음란물 같은, 타당한 이유로 금지되는 제품들은 예외로 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이다. 스스로 구매를 결정하는 경제 체제의 대안은 사람들에게 무슨 제품들이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결정하는 정부 운영 명령 경제일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서독에서 시장 경제를 도입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한때 비꼬듯이 자본주의 소비자 사회의 비판자들에 관해 이렇게 논평했다.

"만약 숙녀들이 자기들의 모자 위에 뻐꾸기를 원하면, 그들에게 뻐꾸기를 가지게 하십시오. 나는 확실히 뻐꾸기로 장식된 모자의 생산을 금지할 생각이 없습니다."

라이너 지텔만 독일 <디 벨트> 前편집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