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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근 칼럼] 지금이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해소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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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2. 13. 18:07

양원근박사 사진
前 KB금융 부사장·경영학 박사
1992년 금융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가는 종목당 10% 한도로 한국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유럽의 한 펀드가 1억 달러를 조성하여 한국 주식시장에 최초로 투자했다.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안국화재보험(현 삼성화재보험) 등 여섯 종목을 편입했고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연말 결산 결과 80% 이상의 수익이 났다. 이른바 저PER(price-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 주식 열풍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주가는 기업의 수익에 기반을 둔다'는 너무나 당연한 저PER주 투자는 선진 투자기법으로 인식되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한국 주식시장을 지배했다. 투자가들은 수익력보다 저평가되어 있는 주식을 선별해서 투자하는 가치투자에 매료되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기업의 가치를 찾아가는 선진적인 모습을 갖추는 데 크게 일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회복과정에서 코스피 전체의 평균 PER이 외국보다 낮은 이유를 찾다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어휘가 등장했고, 주식시장이 떨어질 때마다 언급되었다. 변동성이 큰 기업수익에 기반한 PER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설명하기 더 좋은 지표는 기업의 자산가치 대비 주가수준을 나타내는 PBR(price-bookvalue ratio, 주가순자산비율)이다. 한국의 PBR은 현재 1.0 수준이다. 전 세계 평균이 2.4배 정도고 미국은 4배가 넘는다. PBR이 선진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는 일본도 1.4 수준임을 고려할 때 출산율 통계와 유사한 국가별 순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수출 강국이다. 그런데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터무니없이 혹은 상대적으로 낮다면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있다고 추론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한국만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위험이 주로 거론된다. 북한의 호전적 발언과 도발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끌어내린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은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높게 형성되어 지정학적 요인의 설명력을 떨어뜨린다. GDP 대비 부동산 시가총액 비율이 미국, 유럽, 캐나다, 일본 등이 1~2배 수준인데 한국은 주택의 시가총액만으로도 2022년 기준 GDP 대비 3.2배에 달한다.

북한의 위협이 부동산가격에는 별로 영향이 없는 것에 미루어 주가에도 특별히 할인 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정학적 요인에 외국인 투자가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그러면 한국기업의 어떤 보편적 특징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PBR지표를 평균적으로 크게 낮추고 있을까? 주주에 대한 배당이 적어서일까? 배당수익률(배당금/주가)이 선진국 중에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그 차이가 PBR지표의 차이만큼 크지 않다. 미국, 일본 독일의 배당수익률 평균은 3~4%이며 코스피 2022년 배당수익률은 2.3%다. 사실 기업 이익은 배당으로 받으나 잉여금으로 기업 내에 유보되어 있으나 어차피 주주 자산이다. 단지 배당을 많이 하면 기업내부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일반(소액) 주주들에게 기업의 현금흐름이 양호하다는 시그널을 준다. 이는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

주식의 수요, 공급과 연계해서 주가수준을 볼 수도 있다. 미국기업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이던 1950~1970년대 다우지수는 500과 1000 사이를 오갔다. 1982년 다우지수가 1000을 돌파하고 꾸준히 올라 현재 38,000을 상회하고 있다. 미국에서 1980년 도입된 퇴직연금제도인 401K에 따라 세제혜택을 받는 엄청난 자금이 꾸준히 주식시장으로 들어와 수요가 커졌다. 반면에 제조업경쟁력이 떨어진 기존 미국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줄어 증자보다는 주식소각으로 주식공급을 줄였다. 잉여자금의 주주환원과 주식시장 자금유입은 주가상승의 시작점이 되었다. 특히 주식시장에 지속적인 자금유입은 신기술 기업의 등장 및 성장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중후장대한 제조업의 위치를 빅테크 기업들이 차지하여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신규투자를 계속해야 하거나 리스크에 대비해 내부 충당금 및 자본금을 많이 쌓아야 하는 기업에서 일률적인 배당 증대는 기업의 지속가능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충당금수요가 크지 않은 기업에서 신성장 사업에 투자하지도 않고, 배당수익률도 낮은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주주경영자가 기업의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장기적으로는 낮은 주가로 상속세부담을 피하려 한다는 의심을 산다. 신뢰의 문제가 발생한다. 몇몇 기업에서 대주주 이해관계에 따라 주가가 올라가지 못한다면 주식시장 전체의 신뢰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가계의 잉여자금이 주식시장의 수요로 이어지기 어렵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첫 번째 스텝은 소액주주에게 대주주에 비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이 전제 아래 세제 등을 통해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흐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으로 자금공급이 원활해지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떨어져 투자활동이 왕성해진다. 주가가 상승하며 PBR이 상승하는 선순환이 된다.

미국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401K를 통해 주식시장에 유입된 자금이 소득대체율 80%에 달하며 은퇴 이후 걱정을 크게 덜었다. 한국 주식시장도 정책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자금이 유입되면 PBR이 선진국 수준으로 상승하는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용이하게 조달하여 신(新)성장산업에 투자한다. 한국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의 한계를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다. 타이밍상으로 PBR 상승,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지금이 좋은 기회 같다. 그 결과로 은퇴 후가 불안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면 혹시 출산율도 PBR과 함께 올라갈지 모른다.

양원근 前 KB금융 부사장·경영학 박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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