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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의 와이드엔터]OTT와의 ‘동행’,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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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4. 09. 08. 10:19

자존심 포기 대신 지혜 발휘해 실리 챙기는 '상생의 묘수' 찾아야
전,란, 포스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전,란'의 런칭 포스터가 지난 6일 공개됐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이 BIFF 개막식을 장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전,란'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BIFF 개막작으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이 상영되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이걸 두고 일부 영화팬들 사이에서만 'BIFF마저도 넷플릭스에 백기를 들었네' 'OTT 작품의 무조건적 배제는 시대착오적 발상' 등과 같은 찬반양론이 오가고 있을 뿐, 당사자인 영화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는 듯한 분위기다.

OTT와 영화계, 좀 더 엄밀히 말하면 OTT와 극장업계의 충돌이 처음 벌어졌던 자리는 지난 2017년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였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메이어로위츠 스토리' 등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댄 작품 2편의 경쟁 부문 진출에 대해, 프랑스극장협회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넷플릭스 작품이 극장 상영을 원칙으로 하는 칸에 진출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당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까지 프랑스극장협회의 손을 들어주자, 영화제 측은 "내년부터는 경쟁 부문 초청 자격 조건을 극장 개봉작으로 다시 제한하겠다"며 항복을 선언했다.

칸에서의 이 같은 논란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국내 멀티플렉스 3사가 "홀드백(극장 개봉작은 일정 기간동안 안방극장 공개를 미뤄야 하는 규정)에 어긋난다"면서 '옥자'의 개봉을 거부해, 경기 파주의 명필름아트센터 등 몇 안되는 중소 상영관만 상영한 바 있다.

이렇듯 요즘과 그때를 비교하면 OTT 작품의 영화제 상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된 듯하다. 칸을 제외한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들은 우리보다 훨씬 빨리 '친(親) OTT'로 돌아섰다. 칸이 OTT를 상대로 다시 문을 걸어잠근 2018년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에 그랑프리에 해당되는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또 2년전 제94회 아카데미는 애플TV 플러스의 '코다'에 작품상을 수여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 등 영상 산업의 헤게모니가 OTT로 넘어간지 이미 꽤 됐다. CJ ENM 등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경영 부진으로 몸을 사리는 동안 참신한 기획과 완성도 높은 대본도, 톱스타들과 능력 있는 제작진도 모두 돈 있는 OTT를 향해 몰려가고 있다. 따라서 이 와중에 관련 업계와 영화제 등이 칸처럼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기란 결코 쉽지 않다. 차라리 손을 꽉 잡고 모두에게 이로운 상생의 묘수를 찾는 게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일 수도 있으므로,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올해 BIFF의 결정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부산국제영화제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신임 이사장(가운데)과 박도신 집행위원장 대행(맨 오른쪽) 등 부산국제영화제 주요 관계자들이 지난 3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제29회 영화제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도신 집행위원장 대행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전,란'의 상영작 선정에 대해 "플랫폼이 아닌 작품 자체를 봤고 관객이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를 봤다. 넷플릭스라고 해서 제외하는 건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연합뉴스
그렇다고 우려할 만한 지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OTT, 그 중에서도 해외 OTT와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권한마저 너무 많이 양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걱정스럽다. 일례로 현재 본격적인 촬영 시작을 앞둔 한 드라마의 경우,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모 해외 OTT 측이 캐스팅과 관련된 기존의 룰을 깨고 주연부터 조연까지 주요 배역들의 캐스팅을 직접 진행하는 과정에서 연출자와 작가의 의견은 완전히 배제했다고 한다.

프랑스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만의 자존심 혹은 원칙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OTT와 대등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려는 영상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태도다. 지금 당장 제작비 한푼이 아쉬운 이들을 대상으로 무리한 주문일 수도 있겠지만, 형편이 어려울수록 내줄 건 내주면서도 챙길 건 챙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를테면 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우리한테 있다는 걸 늘 명심하면서 현명하고 당당하게 협업에 임해야 할 시점이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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