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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기준 제한으로 편의점·약국 못가”vs“장애인 접근권 꾸준히 확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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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승인 : 2024. 10. 23. 17:39

3년 만에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원고 측 "바닥면적 제한으로 오히려 접근권 축소"
피고 측 "장애인 소매점 접근권 대체 수단 많아"
대법관 "시설 접근권 미약…'5%' 이치에 안맞아"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진행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소송'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소규모 매장에 부여하지 않은 시행령을 국가가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법성과 국가배상 책임 여부를 두고 양측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23일 대법원은 A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 등 소송 상고심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공개변론이 열리는 건 2021년 6월 이후 3년 만이며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이뤄지는 첫 공개변론이다.

이 사건 쟁점은 국가가 '바닥면접 합계 300㎡ 이상'의 소규모 소매점에만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규정한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사실이 입법 부작위(일정한 처분을 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라 위법한지, 위법하다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다.

이날 원고 측 이주언 변호사는 "서울 편의점 중 바닥면적이 300㎡ 이상인 편의점은 1.4%에 불과하며 전국 편의점 중 편의시설 설치율은 0.35%"이라며 "26차례 실태조사에서 소규모 시설은 단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고 일반 시행령 개정에 통상 5~7개월이 걸리는데 이 규정은 24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첫 시행령을 제정한 이래 2022년까지 약 24년간 300㎡ 이상의 대규모 시설을 제외한 공중이용시설에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면제돼 왔다"며 "시행령이 처음 제정된 1998년엔 이러한 입법이 불가피했더라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행령을 개정할 법적 의무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법률상 명시된 장애인의 접근권 역시 20년 넘게 침해돼왔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배융호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그간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게 아니라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만 먹어왔다"며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서 면적기준을 제한하면서 그 입법취지인 장애인 접근권은 오히려 축소됐고, 특히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해야 하는 음식점, 카페, 약국, 슈퍼마켓 등 대부분의 소매점들은 장애인이 실제로 이용할 수 없는 시설들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에 "편의법 제정 취지를 살려 바닥면적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접근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며 "대법관께서 행정입법 부작위를 확인해 다시는 휠체어 사용자들이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식당을 헤매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정부 측은 1997년 장애인등편의법 제정을 통해 민간 영역까지 편의시설 설치 의무화가 상당히 빠르고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맞섰다.

피고 측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팀장은 "정부는 꾸준히 장애인 복지정책을 수립·운영해왔으며, 5년마다 편의시설 실태현황조사를 실시해 공공시설 대규모 시설 중심 규제에도 불구하고 저조했던 편의시설 설치를 위해 10년간 온힘을 쏟았다"며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편의시설 설치율이 1998년 47.4%, 2003년 75.7%, 2008년도에는 77.5%로 향상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접근·이용권 자체는 다른 권리에 비해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상당히 많은 권리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숙연 대법관이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시설 범위를 정할 광범위한 재량권이 피고 측에 있다하더라도 그 재량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어느정도의 한계를 인정해야, 행정입법의 규율이 어느정도가 되어야 한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냐"고 묻자 정부 측 이산해 변호사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 삶의 주요 활동 영역 중에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권리 침해"라며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접근·이용권 자체는 다른 권리에 비해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상당히 많은 권리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오경미 대법관은 "정부가 그간 교통시설에서의 이동편의와 활동지원 부분에 대해선 많은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이동권은 가장 기초적인 수단으로, 정부가 그동안 노력해 확보한 이동권과 이 사건의 쟁점이 되는 시설 접근권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설 접근권이 확보가 안되는데 이동만 시켜주면 어떡하냐. 이동권과 접근권은 수단이며 실제 대면해 시설을 이용하는 행위에서의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일한 사회활동을 실현하는 것이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궁극적 목적"이라며 "교통편의, 활동지원에 비해 시설 접근권 부분은 상당히 미약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오 대법관은 소매점 접근권이 대체가능한 권리라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서도 "소매점에 대한 권리가 활동지원이나 온라인 활동으로 쉽게 대체가 가능한 권리로 치환될 수는 없다"며 "이는 일상생활의 즉자성을 전혀 구현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교통약자 이동권은 90%이상을 보장하면서 소매점 접근권의 경우 5%도 보장을 안해놓고서는 '시행령에서 할 바 다 했다'고 주장하는 건 도저히 이치에 안맞는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정부 측이 "2018년 이후 개정 준비를 했으나 코로나19로 지연됐다"는 취지로 해명하자 이숙연 대법관은 "최근의 노력보다는 긴 기간 동안의 미비점을 짚어야 한다"며 1998년부터 2018년까지 장애인 소규모 소매점 접근권 향상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참고자료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각계에서 제출한 의견도 공개됐다. 대한변호사협회, 한국사회보장법학회,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은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를 면제하고 있는 시행령 규정을 24년간 개정하지 않은 정부의 입법 부작위는 위법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아울러 장애인 접근권이 헌법상 기본권 지위를 갖는다는 점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판결 선고는 변론 종결 이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최종 토론(전원 합의기일)을 거쳐 2~4개월 내에 이뤄질 전망이다.
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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