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김이석 칼럼] 한국경영인학회 심포지엄에서 ‘희망’을 보았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review.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103010000865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1. 03. 18:00

2024071401001446000086861
김이석 논설심의실장
필자는 기업들이 가장 먼저 소비자를 만족시킬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에 몰두해야겠지만, 정치권의 풍향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정당마다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정책이 다르고 그것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했다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 등이 미칠 영향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래서 기업들이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자유사회로부터 이탈하지 않도록'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지, 2024년 4월 30일 자 27면 참고)

그 글에서 독일 사회의 변화에 둔감한 채 부 쌓기에 골몰했던 '독일의 유대인'들의 비참했던 역사적 사례를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정부가 무거운 전쟁배상금을 마르크화를 찍어내어 갚기로 하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지폐가 땔감이나 벽지로 쓰일 만큼 지폐 가치가 폭락했다. 마르크화 표시 연금과 저축은 휴지조각이 됐다. 독일인들은 좌절했지만, 독일 정부의 의도를 꿰뚫어 본 유대인들은 번창했다. 그러나 나치의 등장으로 독일 사회라는 배가 재산권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자, 분노한 독일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된 유대인들은 악명 높은 가스실로 실려 갔다. 쌓아놓은 부(富)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유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신문을 펼치면 탄핵 아니면 특검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다. 야당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탄핵하겠다고 나섰기에 정확하게 리스트를 꼽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까지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이런 끝없는 비생산적인 정쟁에도 우리 사회가 그런대로 굴러가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꾸준히 시장변화를 관찰하고 대응해 온 숨은 노력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일 한국경영인학회(회장 이웅희)가 주최한 '중국 전기차 생태계와 경쟁력: 한국의 전략은?'이란 심포지엄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이 학회가 그 이름처럼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만이 아니라 경제학자, 법학자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특히 현장에서 경영하는 '경영인'들을 회원으로 두고 함께 당면한 기업 현장의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해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실사구시적인 활동의 목표가 매우 신선했다. 또 이미 답이 알려진 것을 학문적 엄밀성을 동원해서 재확인하는 데 정력을 쏟기보다는 해결이 필요한 문제를 두고 미래 비전을 찾겠다고 한 것도 귀에 들어왔다.
이날 선정된 주제도 우리나라 자동차업계가 당면한 문제인 내연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자동차 패러다임이 변화를 앞둔 대응이었다. 과거 일본이 디지털화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한 반면, 한국은 전산망의 설치에서부터 디지털화에 앞서나감으로써 일본을 성공적으로 추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중국은 내연기관 자동차로는 기존의 글로벌 브랜드를 따라가기는 어렵다고 보고 전기차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 이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 그 결과 비야디(BYD) 등 중국 자동차업체가 글로벌 전기차 업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전기차의 급부상 속에 거품이 끼어있고 그래서 허상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지만, 글로벌 마켓에서 차지하는 중국차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SDV(Software Defined Vehicle)로 진화하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업체 등 전기차 관련 생태계가 중국에서 크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배경을 두고 한국 자동차산업의 활로를 찾는 것이 이번 한국경영인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의 주제였다.

전기 송전을 두고 '직류와 교류'가 다투다가 최종적으로 교류가 승리하는 과정을 보더라도 과연 언제쯤 전기차가 지금의 캐즘(chasm)을 극복하고 내연기관을 대체할 것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걸려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몰고 올 거대한 물결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여기에 올라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마치 일본도 디지털화라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잘 대응하지 못해 과거만큼의 번영을 지속하지 못했듯이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세밀한 변화까지 모두 미리 읽어내고 정확하게 대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큰 흐름은 어느 정도 미리 읽을 수 있다. 그래서 "행운의 여신도 미리 준비하는 자 편을 든다"(Chance favors only the prepared mind)고 하지 않았는가. 한국경영인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이 매우 밀도 있고 진지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아직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