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지적질 꼬리달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review.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126010013264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1. 27. 06:00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발전소에 검사를 하러 가면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검사원이 검사를 하면서 일정 이상의 지적사항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권고사항이나 지적사항 7개를 만들 때까지 계속 검사하게 된다. 이 경우 수검자가 만만한 지적사항 7개를 내놓으면 검사가 일찍 끝날 수 있다. 웃기는 얘기인 것 같지만 이건 사실이다.

검사원 입장에서 지적 사항이 하나도 없는 보고서는 쓰기가 괴로운 것이다. 원자력안전규제의 지적사항에 대해 사업자가 조치를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단서가 붙거나 숙제가 따른다.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면 안전하다고 본다는 식이다. 단서를 다는 이유는 규제자가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다.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의 화법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또 숙제를 붙이기도 한다. '현재까지 안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부분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런 식이다.

그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검사의 횟수를 더하면 더할수록 점점 늘어난다. 40년 원전을 운전했다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것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게 된다. 결국 사업자는 그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안전에 더 중요한 것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전체적인 안전은 저해된다. 원자력시설의 전체적 안전성 향상보다는 규제자의 개인적 면피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정부에서 근무할 때, 과거의 안전현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보고서에는 후속조치가 취해졌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작성돼 있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담당자에게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지 보고서를 보자 했더니 보고서를 보내지 않았다. 답답해서 사업자인 한국전력에게 물었더니 2시간 만에 보고서가 왔다. 그리고 또 두 시간 후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담당자로부터 보고서가 도착했다. 그런데 그 두 보고서는 완전히 똑같았다. 정작 숙제를 줬지만 자기자신은 모니터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규제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 규제검사를 하고 지적할 것이 없으면 없다고 보고서를 상신해도 괜찮은 문화가 되어야 한다. 또 지적사항에 대해 후속조치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숙제를 남기는 것도 유한한 범위여야 한다. 숙제가 많으면 실제 공부를 못할 수도 있다. 안전상 더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고 숙제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규제자가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무엇이 최적인지를 검토하고 규제체제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뭔가 지적질을 해야하지만 규제자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자기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숙제를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것은 사업자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지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업자는 인력을 무한히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규제의 절차가 잘못돼 규제자 개인에 부담을 주거나 안전에 덜 중요한 곳에 사업자의 자원이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된 부분에 대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검사원이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면 좋겠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