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경욱 칼럼] 문제는 국가경쟁력이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review.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209010005349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2. 09. 18:16

이경욱대기자-웹용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꼬박 27년 전인 1997년 12월 3일 밤 당시 재정경제원(재경원·현 기획재정부)을 출입했던 필자는 일과 후 과천 재경원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이라 야근을 되풀이했을 때다. 퇴근길 케이크를 샀다. 아내와 3살 된 아들과 성탄절 분위기를 내보려 했다. 촛불을 켜는 순간, 허리춤 삐삐(페이저)가 요동쳤다. 전화번호를 보니 재경원 공보관실이었다. 재경원 직원은 "잠시 후 IMF 구제금융 수혜 발표가 있으니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나와 달라"고 했다.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황당해 하는 아내·아들의 표정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IMF 외환위기는 기본적으로 달러 유동성이 부족에서 발생했지만 우리는 'IMF 플러스'라는 다른 나라보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 나중에 IMF도 너무 가혹한 구조조정 정책이 정책적 '실수'임을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을 당시 정부가 밀어붙인 탓에 절대 망할 것 같지 않았던 거대 그룹들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 결과 150만명이나 직장에서 쫓겨났고 길거리에 나앉았다. 극단선택을 한 가장도 적지 않았다.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금 모으기 운동에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들이 참여하면서 세계적 화제가 되기도 했고, 원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수출을 크게 증가시켜 모자라던 달러화를 벌어들였다. 당시 정부의 과도한 구조조정 정책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다앉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IMF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 우리는 경제발전을 계속해 왔고 지금은 K팝을 위시한 한류까지 전 세계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나왔다. 국회의 해제 요구로 몇 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후폭풍'은 거세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던 부정선거 수사를 위한 '중앙선관위' 서버 압수가 목적이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야당은 윤 대통령을 비롯해 계엄선포 가담자들을 한 구석으로 세차게 몰아넣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완료될 때까지 주말마다 탄핵안을 제출하겠다는 게 야당의 의지다. 정국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태세다.
이 시점에서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바로 '국가경쟁력'이다.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 군사력 5위권 국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 한류의 국가,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이 이번 일로 훼손되면 안 된다. 우리의 대외경쟁력은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해나갈 때 유지될 것이다. 환율이 치솟고 주식시장이 급락세를 보이는 등 금융시장 불안세가 만만치 않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되 정치인들이 국가경쟁력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 지켜보고 나중에 투표로 말하면 된다. 지금이 위기라고는 하지만 IMF의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겪은 출혈만 하겠는가. 그 서슬 퍼런 IMF 체제도 능히 극복한 우리다.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흔들림 없이 제 할 일을 다 하도록 해야 한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민심을 거스르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국민은 물론 세계의 시선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주요국에 특사를 서둘러 보내 우리의 경제·정치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하다. 야당은 권력 지향적 당리당략에 치우치기보다는 국가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기 바란다. 무조건적 비판과 비난 대신 국가 발전을 위한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비중을 둬야 한다. '폭주'는 곤란하다.

당장 다음 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을 갖고 임기를 시작한다. 이미 멕시코·캐나다 등 3개국 관세 대폭 인상 등 글로벌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책을 예고했다. '안보 무임승차'는 안 된다고 되풀이한다. IMF 체제 당시 위세를 떨쳤던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벌써 국가신인도 하향 조정 으름장을 놓는다. 여행객들도 급감 추세다. 현안이 너무 많다. 트럼프 취임식 전 정부 사절단을 미국에 보내 대미 외교의 근간을 지켜나가야 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내년도 예산안의 적시 처리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들은 해외 거래선에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해 줘야 한다.

수십 년 만에 계엄 선포라는 돌발 상황을 경험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속히 일상으로 되돌아가 차분함을 지켜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금 숨 고르기, 쉼표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향한 언행을 절제해야 한다. 지난 세월 안간힘을 쓰면서 가꿔온 우리의 국제경쟁력을 우리가 '집단 지성'으로 지켜내야 한다. 이미 엎질러진 일이 된 계엄 이후 일상이 정상화되는 모습을 가슴 졸이며 바라본다.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문제는 국가경쟁력'이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